‘밑그림’ 나온 미국 스테이블코인…가장 수혜보는 사람은 누구?
미국 상원에서 오랫동안 계류되어 있던 클라리티 법안(Clarity Act)이 이제 통과되는 분위기다. 논란이 됐던 제3자 플랫폼의 스테이블코인 이자 보상은 금지시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멀리서 뉴스를 소비하는 투자자들은 “이제 규제가 정리됐으니 크립토 전체가 한 단계 커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시겠지만 최근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방향을 보면, 현실은 조금 다르다.
이번 제도화는 크립토 전체를 한꺼번에 띄워주는 법안이라기보다는 몇몇 플레이어에게만 유리한 구조를 만드는 법안에 더 가깝다. 특히 대형 발행사, 결제·커스터디 인프라, 규제 적응력이 높은 사업자에게는 기회가 되지만, 디파이(DeFi), 알트 유동성, 고수익 예치 모델에는 기대보다 훨씬 차갑다.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 규제 룰메이킹 문서 (출처: occ.gov)
스테이블코인, 일단은 ‘안전한 디지털 달러 배관’으로
미 통화감독청(OCC)은 올해 2월 GENIUS Act 시행을 위한 제안규칙을 내놨다. 이 내용은 발행·상환·준비금뿐 아니라 자본, 리스크관리, 보고, 검사까지 폭넓게 담고 있다.
시장에는 원래 더 공격적인 기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이 법제화되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오고, 그 돈이 디파이와 알트 시장으로 흘러가며 전체 디지털 자산 시장 유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기대였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규제가 설정되는 방향은 다르다. 이번 구조는 스테이블코인을 고수익 자산으로 키우기보다, 규율된 결제형 디지털 달러로 만들려는 쪽에 가깝다. 연준 연구노트도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예금, 단기 미 국채, 중앙은행 계정 잔액 같은 안전자산으로 뒷받침되는 결제 수단으로 설명하고 있고, 직접적인 이자 지급은 금지된다고 정리한다.
쉽게 말하면, 예전 시장이 기대한 건 “스테이블코인이 돈을 빨아들이는 투자형 엔진”이었는데, 지금 제도권이 만들고 있는 건 “결제·송금에 쓰이는 안전한 디지털 달러 배관”이라는 얘기다. 클라리티 법안을 통해 결정되는 내용을 젖혀 두더라도 말이다.
디파이와 알트코인 유동성은 기대 이하일 듯
그동안 디지털 자산 업계와 투자자들이 원했던 것은 스테이블코인의 단순한 합법화가 아니었다. 스테이블코인이 예치 수요와 투자 수요를 동시에 빨아들이는 엔진이 되어, 디파이 TVL도 커지고, 알트 시장 전체에도 유동성이 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류였다.
하지만 지금 규제 방향은 그와는 반대 방향이다. 은행권과 크립토 업계는 앞으로도 제3자 보상이나 리워드 구조를 두고 지속적으로 충돌할 것이다. 이 말은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커진다고 해서 알트코인 시장 전체가 같이 뜨는 구조는 예전보다 훨씬 약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당연히 발행사가 제일 먼저 수혜를 볼 것처럼 보인다. 서클(Circle) 같은 기존 대형 발행사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회사들은 원래부터 준비금 운용 수익과 규제 대응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었기 때문이다.
준비금을 굴리고 공시, 감사,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는 체계를 이미 갖춘 대형 기업들도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다. 스테이블코인 규제로 기존 비지니스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대표 사례로 지목되고 있는 미국의 디지털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4월 초 OCC로부터 조건부로 연방 신탁회사인가(National Trust Company Charter)를 획득했다.
이 승인은 코인베이스를 상업은행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연방 감독 아래에서 커스터디와 기관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코인베이스가 이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것은 '누가 코인을 더 많이 찍느냐' 못지 않게 '누가 제도권 안에서 그 코인을 보관, 정산, 유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시장이 놓치기 쉬운 숨은 수혜자: 커스터디 은행과 신탁 사업자
많은 사람들은 클라리티 법안 갈등을 '은행 vs 디지털 자산 업계'의 구도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은행권 내부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갈릴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누군가는 그 준비금과 관련 자산을 법적으로 깔끔하게 분리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OCC 제안규칙은 발행사의 리스크 관리와 보고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준비금 보관, 커스터디, 고객자산 분리, 기관용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기회를 준다.
은행권은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은행은 예금 유출을 걱정해야 하고, 어떤 은행은 오히려 준비금 보관 수수료, 커스터디 수수료, 기관 서비스 수익을 먹을 수 있다. 최근 2028년까지 최대 50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분석한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분석이 화제가 됐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전통 금융권의 은행들이 이만큼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놓고 즉자적으로 다툼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상황은 '은행이 다 막아냈다'도 아니고, '크립토가 전부 졌다'도 아니다. 철저히 개별 기업의 움직임에 따라 승패가 나뉠 수 있다. 월가에서도 예금을 잃는 은행과 스테이블코인 배관을 먹는 은행이 갈릴 수 있다.
'사용 보상'에 주목할 때
클라리티 법안 초안에 제3자 플랫폼에서 스테이블코인 이자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언뜻 보면 이자 금지는 치명적인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라고 보긴 어렵다. 실전에서는 시장이 항상 우회가 아니라 재설계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미국 디지털 자산 업계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보유 자체에 돈을 주는 구조가 아니라, 사용 행위에 보상을 붙이는 구조가 제안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행위에 스테이블코인으로 혜택을 주는 것이다.
● 결제할 때 할인
● 로열티 프로그램(loyalty program) 포인트
● 사용량 기반 리워드
● 가맹점 보조금(merchant subsidy)
● 환전 수수료 우대
이것은 마치 한국의 인터넷 가입 대리점이 통신요금 자체를 바꾸지 못하니, 대신 페이백과 현금성 혜택으로 고객을 끌어오는 구조와 비슷하다. 앞으로 경쟁은 스테이블코인 금리 경쟁이 아니라 유통망 경쟁과 인센티브 설계에서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자산 업계에서는 이걸 잘하는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가져갈 것이다.
가장 빠른 변화는 미국 단기국채 시장에 다가온다
돈은 어디로 몰리게 될까.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블코인이 커지면 발행사 주식이 제일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구조적으로 더 단순하게 연결되는 건 단기국채시장 쪽이다.
연준 연구노트는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으로 단기 미 국채가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IMF 논문에서도 USDC와 USDT 시가총액이 1% 늘어나는 충격이 1개월 T-bill 금리를 약 1.9bp 낮춘다고 추정했다.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 규제 룰메이킹 문서 (출처: occ.gov)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그걸 뒤에서 받쳐주기 위해 만기가 매우 짧은 미국의 단기 국채 수요가 증가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주가보다도 미국 단기국채와 그 주변 생태계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찾아보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규제 해석을 해주고, 구조를 설계해주고, 허가 리스크를 줄여주는 로펌, 컨설팅, 컴플라이언스 벤더 기업들의 주가도 긍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스테이블코인 업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조금만 잘못 설계돼도 OCC, FDIC, 연준, 주 규제기관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OCC 제안규칙은 주간 보고, 발행, 상환 리스크 관리, 운영 손실, 규정 위반 감시 등 매우 세세한 감독 프레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할만 하다. 미국의 글로벌 종합 로펌인 닉슨 피바디(Nixon Peabody) 등은 벌써 B2B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사업적 기회는 의외의 영역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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