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장 인터미션이 끝나면 크립토의 다음 막이 오른다 - 컨센서스 홍콩 2026 참관기 -
컨센서스 홍콩 2026 참관기
2월 둘째주 홍콩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블록체인 행사 컨센서스(Consensus Hong Kong 2026)에 다녀왔다. 하락장의 블록체인 행사를 가본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의 행사들과는 달라진 공기가 느껴졌다. 밈코인의 미래나 투자 수익 100배의 약속은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 무대에서 눈에 띈 건 블랙록 임원, 홍콩 정부 담당장관, 싱가포르 거래소 전략가 등이었다.
본 행사와 사이드이벤트 및 인터뷰들을 소화하면서, 크게 세 가지 흐름이 두드러진다고 여겼다. 실물자산 토큰화(RWA), 인공지능(AI), 그리고 기관투자자의 진입. 각각이 개인 투자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본다.

출처 - 김외현
국채와 금이 토큰이 된다
RWA는 국채, 금,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을 토큰으로 만들어 블록체인에서 거래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블랙록의 토큰화 펀드 BUIDL은 운용자산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본 행사에서는 Securitize와 Ondo라는 두 회사가 토큰화의 설계 방식을 놓고 공개 논쟁을 벌였다. 전자는 규제를 내장한 허가형 모델, 후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모델이다. 중요한 건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냐”로 대화의 무게가 옮겨갔다는 점이다.
“가장 성공한 RWA는 사실 USDT”라는 흥미로운 지적도 있었다. 달러라는 실물자산을 토큰화한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가장 널리 쓰이는 RWA라는 뜻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이나 국채까지 담보로 삼기 시작하면서, RWA와 스테이블코인의 경계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다. 골드 토큰인 PAXG의 수요가 급증해 발행사인 팍소스가 추가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소식도 이 흐름을 보여준다.
개인 투자자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주식시장에서 로빈후드가 소수점 단위 거래로 진입 장벽을 낮춘 것처럼, 블록체인에서는 10~20달러 단위로 미국 국채나 재생에너지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고 규제 리스크도 있지만, 기존에 기관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었던 자산군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AI가 크립토를 만났을 때
홍콩 재정사장(장관) 폴 찬은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온체인에서 거래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바이낸스 CEO 리처드 텅은 더 직설적이었다. “호텔 예약, 항공권 구매 같은 걸 AI가 대신 할 때, 결제는 크립토와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질 것이다. 크립토는 AI의 화폐다.” AI 에이전트끼리 자율적으로 거래하는 세상이 오면, 은행 계좌가 아닌 블록체인 지갑이 자연스러운 결제 수단이 된다는 논리다.
크립토 업계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흐름이다. 바이트댄스 계열사인 바이트플러스는 이미 여러 대형 거래소에 AI 고객 서비스와 자금세탁 방지 자동화 시스템을 납품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트겟 CEO는 현재 AI 트레이딩 봇을 “인턴”에 비유하면서도 3~5년 내에 많은 인간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SingularityNET의 CEO 벤 괴르첼은 “2년 안에 AI가 인간보다 전략적 사고를 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크립토가 AI 에이전트의 결제 인프라가 되는 미래와, AI가 크립토 산업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현재가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벤처캐피털들의 시선은 냉정했다. 스파르탄 그룹의 켈빈 코는 “12개월 전에는 ChatGPT 껍데기만 씌워도 투자를 받았지만, 이제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개인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AI’를 이름에 붙인 코인이라고 해서 실제로 AI 기술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실제 매출이 있는지, 어떤 제품을 운영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기관은 크립토로 오고 있지만, 우리와 다른 문으로 드나든다
블랙록 아시아 담당 임원 니콜라스 피치는 아시아 가계자산 108조 달러의 1%만 크립토에 배분해도 약 2조 달러, 현재 크립토 시장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이 유입된다고 계산했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ETF인 IBIT은 출시 이후 53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해 역대 가장 빠르게 커진 ETF가 됐고, 아시아 투자자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거래소 SGX는 크립토 선물 상품을 출시한 지 2개월 만에 20억 달러 거래량을 기록했고, 거래의 60% 이상이 아시아 시간대에서 발생했다.
이런 숫자만 보면 크립토에 거대한 자금이 밀려올 것 같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기관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거래소를 그대로 쓰지 않는다. 스탠다드차타드 계열 커스터디 업체 Zodia의 루이스 로셔는 “40년 경력의 은행 CEO가 크립토 네이티브 업체 하나에 자기 커리어를 걸지는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기관들은 기존 은행 브랜드를 통해 접근하고, 전통 금융 형식의 일일 보고서와 감사 증적을 요구하며, 공격적인 방향성 베팅보다 시장 중립 전략을 선호한다. 기관의 진입이 곧 가격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시장이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에 가깝다.
현장의 온도
숫자와 무대 위 발언만으로는 행사의 진짜 분위기를 전하기 어렵다. 올해는 스폰서 비용을 지불하고 무대에 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뒷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코인 행사 최초로 자기 돈 주고 술을 사먹어야 했다는 뼈 있는 농담이 오갔다. 유명 KOL이 “예전에는 프로젝트를 사냥했는데 이제는 맛집을 사냥한다”고 한 이야기가 돌아다닐 정도로, 행사장의 에너지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진지한 프로젝트 중에서도 토큰 상장(ICO)보다 나스닥이나 홍콩 IPO를 선호하는 곳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론자들조차 “크립토 자체가 죽은 건 아니다”고 한 것은 흥미롭다. 오랜 내러티브는 끝났지만, 결제·컴플라이언스·기관 인프라 쪽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인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바이낸스 CEO 텅도 “리테일 수요는 작년보다 줄었지만 기관·기업의 자본 배치는 여전히 강하다. 스마트 머니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충격에서 변화로
경제사학자 칼로타 페레즈는 모든 기술혁명에는 두 단계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충격’과 투기적 광풍이 중심이지만, 거품이 꺼진 뒤에는 그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이끄는 ‘전개’의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인터넷도 닷컴 버블 붕괴 후에야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이 진짜 가치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크립토가 그 전환점에 온 것은 아닐까. 컨센서스 홍콩의 달라진 기류는 그래서 나타난 게 아닐까.
솔라나 재단 릴리 류 회장은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가 게임이나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금융과 시장이라고 단언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55억명 모두에게 자본시장을 열어주는 인프라가 되는 것이 최종 목적지라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내일 당장의 코인 가격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밈코인의 100배 수익을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블록체인이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는 큰 그림 속에서 저마다 투자 전략을 점검해 보는 편이 더 나은 선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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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외현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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