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현 기자의 EX레이더] 시행 임박한 ‘트래블룰’ 오해 풀어보기
올해 1월 가상자산 투자자 모임방에서 ‘일부 거래소가 가두리를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몇몇 거래소가 메타마스크 등 개인 전자지갑으로의 출금을 막았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가두리란 거래소가 특정 가상자산의 입출금을 인위적으로 막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투자자의 오해였습니다. 트래블룰(Travel Rule, 자금이동규칙)을 전혀 알지 못하는 투자자 입장에선 전자지갑으로의 출금이 갑자기 막힌다니 당황할 법도 합니다.
트래블룰은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령 10조의10에 명시된 규정입니다.
가상자산사업자(VASP)가 다른 가상자산사업자에게 100만 원 이상의 가상자산을 이전하는 경우 그 송신인과 수취인의 성명, 지갑 주소와 같은 정보를 파악해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금융분석원장 또는 받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요청하는 경우 이용자의 주민등록번호도 제공해야 합니다.
금융권은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춰 송금자 정보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가상자산 시장에는 그런 국제표준 기준이 없다보니 금융당국이 법으로 가상자산사업자들이 자금세탁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규정한 것입니다.
문제는 개인 전자지갑은 이용자의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메타마스크, 팬텀 등은 가입 시 성명,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용자가 복구에 필요한 시드 구문만 숙지하고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생성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보니 국내 거래소 이용자가 메타마스크 등으로 100만원 이상의 가상자산을 보냈을 경우에도 거래소는 그 메타마스크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개인 지갑 제공업체는 그 운영 주체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거래소가 트래블룰 시스템 적용을 요청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아예 개인 지갑으로의 출금을 차단하는 임시방편을 쓰게 된 것이죠.
트래블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용자들도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업계를 탄압하기 위해 내놓은 규제다’라는 불만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 역시 사실과 다른데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2019년 6월 가상자산에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는 FATF 회원국으로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가 특금법을 개정하게 된 것이죠. FATF는 2021년 10월 한발 더 나아가 “VASP는 경우에 따라 이용자들의 개인 지갑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개정 지침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트래블룰 규제 시행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긴 합니다. 4월1일 트래블룰 제도를 시행하는 일본을 제외하면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등은 아직 시행일을 법으로 못박지는 않았습니다. 시기의 차이일뿐, 트래블룰은 언젠가 모든 FATF 회원국들이 이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실제로 코인베이스 등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올해 2월 트래블룰 솔루션 연합 ‘트러스트(Travel Rule Universal Solution Technology)에 가입했습니다.
다만,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습니다. 일부 은행은 실명계정 계약을 맺은 거래소에 사전 등록된 지갑 주소로만 출금을 허용하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시행하게끔 했습니다. 다른 은행은 그런 내용이 없다보니 거래소마다 트래블룰 관련 정책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법에 의거한 트래블룰 시행일까지는 다소 남았으니 금융당국이 개인지갑 출금 제한 여부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 함지현연구원
외부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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