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희 변호사의 Focus] 거래소에서 판매한 리플은 증권이 아니다
뉴욕남부지방법원 담당 재판부는 2023. 7. 13. 리플랩스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의 소송에 대한 약식 판결(Summary judgment)을 내렸다(20 Civ. 10832). 약식 판결은 정식심리가 진행되기 전에 법원의 법리에 따른 판단을 받는 절차를 의미한다. 이는 중요한 사실에 대하여 상호 간에 다툼이 없고, 신청 법률 판단으로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을 때 활용되는 방식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리플랩스가 발행한 리플(XRP)의 증권성을 거래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판단했다. 일반인에 대한 프로그램 방식의 판매(거래소를 통한)는 증권으로 볼 수 없고, 기관투자자에 대한 직접 판매는 증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상물이 증권인지를 판단하는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상 규제 체계와는 다르게 투자자와 발행인이 체결한 계약의 성격이 투자계약인지 여부에 따라 투자계약성을 판단하고, 이때 계약의 증표를 투자계약증권으로 보는 구조이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바로 하위 테스트(Howey Test)다.
이번 리플랩스 사건의 판결문에도 나타나듯이 일반 자산인 금, 은, 설탕도 판매 상황에 따라서 투자계약으로 판매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의 핵심은 리플랩스와 투자자(일반투자자 또는 기관투자자) 사이의 계약이 투자계약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Howey Test 요건 즉, 공동사업성, 금전의 투자, 이익의 기대, 주로 타인이 수행하는 사업, 이 네 가지 요건을 나열하고 각 요건을 충족하는지 판단하였다. 공동사업성과 관련해서는 자금의 풀링(pooling)이 있었기 때문에 공동사업으로 볼 수 있다고 하면서(수평적 공동성), 리플랩스 사업의 성공과 투자자의 성공이 연동되어 있는 구조(수직적 공동성)라는 점을 추가로 언급하였다. 다음으로 금전의 투자는 특별한 이슈 없이 충족되고, 주로 타인이 수행하는 사업이라는 점도 충족되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익의 기대와 관련하여서 일반투자자의 경우 거래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바, 리플랩스의 사업상 활동으로부터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투자계약증권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반면 기관투자자의 경우에는 리플랩스의 활동을 통해서 XRP 가격이 인상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으므로 투자계약이 성립하고, XRP 판매와 관련된 증권 발행절차를 거쳤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리플랩스와 SEC의 소송에서 담당 재판부는 거래 상대방 및 판매 방식에 따라서 증권성을 달리 본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 테라폼랩스 사건의 재판부는 이러한 리플랩스의 판결에 대하여 판매 대상에 따라 이익의 기대를 다르게 본 부분에 대하여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테라폼랩스 측 주장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표명하였다. 리플랩스 판결의 주된 핵심 쟁점이 이익의 기대인 것을 고려하면, 테라폼랩스 사건에서 재판부의 증권성 판단을 달리 볼 수 있게 하는 지점이다.
최근 미국 법원이 SEC가 요청한 리플 판결에 대한 항소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중간 항소의 성사는 SEC와 리플랩스가 제출한 서류를 심사한 뒤 결정된다. 이를 통해 법원이 SEC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항소 법원에서 또다시 XRP의 증권성 여부를 가릴 가능성이 높기에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 한서희변호사
법무법인(유한)바른
4차산업대응팀 팀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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