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팅랩] 한국은행의 모의실험으로 살펴본 한국형 CBDC
한국은행의 CBDC 모의실험
2022년 11월 7일,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모의실험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본 모의실험은 분산원장 기반 CBDC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2021년 10월부터 약 10개월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은 보도자료 끝에 CBDC 도입 여부는 아직 미정이며, 본 연구에서 제시한 CBDC 모델이 최종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 모의실험이 한국은행의 최근 몇 년간의 CBDC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인 점을 생각한다면, 이를 통해 향후 발행될 한국형 CBDC가 어떤 모습일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모의실험은 크게 2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2021년 8월부터 4개월간 진행된 1단계 실험에서는 분산원장 기반의 CBDC 모의실험 환경을 클라우드에 조성하고 CBDC의 제조, 발행, 유통, 환수 등 기본 기능을 주로 테스트하였습니다. 이후 6월까지 진행한 2단계 실험에서는 CBDC를 활용한 지급서비스와 정책지원 업무 등 확장 기능의 구현 가능성을 점검했습니다. 또한, 영지식 증명 등 최신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한국은행이 CBDC를 발행하고 민간기관이 유통하는 구조
우선 1단계 실험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형 CBDC는 중앙은행이 CBDC의 발행과 유통을 모두 담당하는 직접형이 아니라, 중앙은행은 CBDC를 발행만 하고 유통과 대고객 서비스는 민간기관이 담당하는 간접형이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CBDC 유통을 담당할 민간기관을 금융기관으로 한정하지 않고 빅테크, 핀테크 등도 포함하였다는 점입니다. 한국은행이 제시한 모의실험 환경(안)에 따르면, 실제 이용자가 CBDC를 보관·이체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CBDC 모바일 지갑’을 민간기관이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로 실제 CBDC가 발행된다면, 전통 금융회사와 빅테크, 핀테크 간에 자사의 모바일 지갑을 보급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한국은행>
오프라인 결제, 이자지급, 디지털자산 구매 등 다양한 확장 기능
2단계 실험에서는 CBDC를 활용한 오프라인 거래, 국가 간 송금 등 지급서비스, 이자지급, 압류 등 정책 지원 업무와 관련한 확장 기능의 구현 가능성 검토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중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오프라인 결제 및 이자지급 기능 그리고 디지털자산 구매 기능입니다.
우선 오프라인 결제 기능은 송금인과 수취인의 모바일기기, IC 카드 등과 같은 전자기기가 모두 오프라인인 상황에서 근거리무선통신(NFC) 등 해당 기기의 탑재된 자체 통신 기능을 통해 CBDC 거래가 가능한 것입니다. 해당 기능을 도입할 경우 통신사 장애, 자연재해 등으로 민간의 지급결제서비스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CBDC가 실물 화폐와 함께 백업 지급수단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이자지급 기능은 이용자가 개인지갑에 보유한 CBDC에 이자를 붙여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이너스 이자에 대한 테스트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마이너스 이자란 보통 은행에 예금을 맡긴 대가로 받는 이자와 달리 예금에 대해 수수료를 받아 경제주체가 소비 또는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는 실험적인 통화정책입니다. 마이너스 이자를 통해 중앙은행이 민간의 구매력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경기 침체기에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자산 구매 기능입니다. 한국은행은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이용하여 다른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발행된 디지털자산을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실시간으로 토큰화된 자산의 소유권과 CBDC를 활용한 대금결제를 성공적으로 테스트했다고 밝혔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기능을 현실화된다면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이 디지털자산 구매를 위해 실명확인계좌에 예치금을 입금할 필요 없이, 본인의 CBDC 개인지갑에서 손쉽게 디지털자산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자산 거래소 입장에서도 CBDC만큼 자금출처 관리가 확실한 수단이 없으므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더욱 손쉽게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CBDC가 열어줄 새로운 금융생태계
한국은행은 CBDC 도입에 있어 이체, 지급결제와 같은 단순 기능뿐만 아니라,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한 여러 가지 확장 가능성도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DeFi의 매개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스테이블코인인 USDT도 운영이 불투명하여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가에서 지급을 보증하며 스마트 컨트랙트를 적용할 수 있는 CBDC의 등장은 DeFi가 대중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향후 몇 년 안에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CBDC와 연계하여 사전 설정된 알고리즘에 따라 사람의 개입 없이 운영되는 탈중앙화 금융상품을 판매한다던가, NFT와 토큰화로 유동화된 각종 자산을 합성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민간에서 공급할 CBDC 모바일 지갑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한국은행의 평가에 따르면, 이번 실험환경에서 측정된 CBDC의 초당 거래 처리성능은 최대 2,000여 건으로,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소액결제시스템의 대부분 거래를 흡수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소액결제시스템의 하루 평균 초당 거래 건수는 1,000건 미만임). 다시 말해, 사실상 현재 사용되는 비대면 금융거래 대부분이 CBDC를 활용한 거래로 대체되는 것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높은 신뢰성을 바탕으로 CBDC가 널리 보급된다면, CBDC 모바일 지갑은 모든 비대면 금융서비스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행이 CBDC와 관련하여 실시한 외부 컨설팅에서 CBDC 모바일 지갑의 주요 요건으로 ‘스테이블코인 등 다른 디지털자산을 CBDC와 함께 보관할 수 있을 것’이 제시되었다고 합니다. 향후 이 요건이 실제로 반영된다면 원화 CBDC, 해외국가의 CBDC, NFT, 비트코인 등 여러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자산을 CBDC 모바일 지갑 하나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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